(가) “느 집엔 이거 없지?”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, 제가 준 것을 남 이 알면 큰일 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.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“너, 봄 감자가 맛있단다.” “난 감자 안 먹는다. 너나 먹어라.”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 를 도로 어깨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.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, 그뿐만 아니 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 어진다.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때서야 비로소 돌아 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. 우리가 이 동리에 들어 온 것은 근 삼 년째 되어 오지만, 여태껏 가무잡잡 한 점순이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 진 법이 없었다. 게다가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 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.
(나) 설혹 주는 감자를 안 받아먹은 것이 실례라 하 면, 주면 그냥 주었지 “느 집엔 이거 없지?”는 다 뭐 냐. 그렇잖아도 저희는 마름이고 우리는 그 손에서 배재를 얻어 땅을 부치므로 일상 굽실거린다. 우리 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집이 없어서 곤란으로 지낼 제, 집터를 빌리고 그 위에 집을 또 짓도록 마 련해 준 것도 점순네의 호의였다. 그리고 우리 어머 니 아버지도 농사 때 양식이 달리면 점순네한테 가 서 부지런히 꾸어다 먹으면서, 인품 그런 집은 다시 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. 그러면서도 열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수군수군하고 붙어 다니면 동네의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어머니였다. 왜냐하면 내가 점순이하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점순네가 노할 것이고, 그러면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었다.
(다)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제집 수탉을 몰고 와 서 우리 수탉과 쌈을 붙여 놓는다. 제집 수탉은 썩 험상궂게 생기고 쌈이라면 홰를 치는 고로 으레 이 길 것을 알기 때문이다. 그래서 툭하면 우리 수탉이 면두며 눈깔이 피로 흐드르하게 되도록 해 놓는다. 어떤 때에는 우리 수탉이 나오지를 않으니까 요놈 의 계집애가 모이를 쥐고 와서 꾀어내다가 쌈을 붙 인다.
(라) 나는 대뜸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수탉을 단매로 때려 엎었다. 닭은 푹 엎어진 채 다 리 하나 꼼짝 못하고 그대로 죽어 버렸다. 그리고 나는 멍하니 섰다가 점순이가 매섭게 눈을 홉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. “이놈아! 너 왜 남의 닭을 때려죽이니?” “그럼 어때?” 하고 일어나다가 “뭐, 이 자식아! 누 집 닭인데?” 하고 복장을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. 그 러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 스럽고,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인젠 땅이 떨어지 고 집도 내쫓기고 해야 될는지 모른다.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 고는 얼김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. 그러다 점순이 가 앞으로 다가와서 “그럼, 너 이담부턴 안 그럴 테냐?” 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 길을 찾은 듯싶었다.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 르건만 / “그래 !” /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